언론계 대표 중진들을 모시고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와 관련한 말씀을 나눌 귀중한 기회를 주신 것에 먼저 감사드린다. 제한된 시간인 만큼 가능하면 자료에 나와 있는 이야기는 줄이고 대신 여러분들의 말씀을 많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한전이 하고 있는 여러 일들이 보다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언론의 도움이 절실한 만큼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깊은 관심과 도움을 당부 드리고 싶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달라진 한전의 모습이다. 자칫 자랑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최근 수년간 한전은 그야말로 대변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한전은 직원수 2만600명의 국내 최대 공기업이다. 자산가치가 208조3000억원으로 삼성, 현대자동차에 이어 3위다. 하지만 취임 당시만 해도 한전의 모습은 그야말로 만년적자, 부채투성이 공기업의 대명사였다. 실제 2012년 한전은 8180억원의 적자를 냈고, 부채비율은 133%. 여기에다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했다. 누가 봐도 변화와 개혁을 위한 메스가 시급히 필요했다. 더욱이 2012년 12월, 불과 며칠 후면 새로운 정권이 출현하는 묘한 시점에 한전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런 상황에서 취임한 본인을 두고 당시 ‘패전처리 투수’라고 했던 사람도 많았다.
   일단 ‘한전호’에 승선했지만 걱정이 태산이었다. 산업자원부 차관 이후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장, 코트라 사장 등 공기업(공공기관) 경험만 7년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내가 잘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내게 주어진 소명이라 생각하고 일단 문제점부터 찾아 나섰다. 그리고 당면한 난제들을 추렸다. 시급한 적자 탈출, 무사안일 조직문화, 본사 지방이전, 전력수급 불안, 에너지 신사업 대응 등 난제들의 해결은 하나같이 비관적이었으며, 모든 분야에 걸친 개혁이 시급했다. 하지만 서둔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 따라 3단계 경영방침을 제시하고 이를 연차별로 진행했다. 우선 2013년 첫해에는 회사 안팎으로 모든 과제에서 상호신뢰회복에 최우선을 두었다. 이어 2014년에는 개선된 신뢰를 바탕으로 성과를 만들어 가자는 의지를 다졌으며, 2015년에는 개선된 상황을 미래와 세계와 시장을 향한 질적 변화로 유도해 나갔다. 

 작년 1조3천억원 사상최대 영업이익 달성 
  이런 노력이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직원들을 하나둘씩 일으켜 세웠다. 2만명의 조직은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결과는 대반전이었다. 열매도 달콤했다. 한전은 작년 1조3천원이 넘는  사상최대의 영업이익을 냈다. 취임이후 주가도 3배 상승하며 시가총액은 8위에서 2위로 뛰어 올랐다. 신용평가 등급은 세계 3대 평가기관 모두에서 최고 수준을 받았으며, 포버스 글로벌 2000은 한전을 전력회사 부문에서 세계 1위 기업으로 선정했다. 물론 이같은 결실은 사장인 저를 비롯해 한전 임직원 모두의 노력의 결과다.
  돌이켜보면 한전은 쉬운 조직이 아니다. 자존심이 세고, 잘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작정하면 화력은 나라를 바꿀 정도로 세다. 전력 수급, 밀양 갈등 등의 문제를 ‘마음먹고 해결해보자’ 하니 실제 해결이 됐다. 굉장히 힘이 있는 조직이면서 아주 독특하다. 이런 한전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직원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만명의 직원과 소통하기 위해 편지를 썼고,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한전은 상처를 많이 받은 조직이다. 사람의 마음이 한번 상처를 받으면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가급적 직원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성공의 기쁨을 임직원 모두와 함께 하기위해 책도 썼다, 올해 4월 출간한 한전 사장으로서 역전 승리투수가 된 경험담을 녹인 ‘조환익의 전력투구’라는 졸저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전력난 극복, 밀양 송전선로 건설, 만성적자 탈피, 삼성동 본사 부지 매각 등의 현안을 해결한 과정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신기후체제에서 새로운 사업기회 잡을 것
  앞서 말씀드렸듯이 한전의 상황은 한마디로 좋다. 작년 정부의 21개 기관장 평가에서 가장 높은 우수 등급을 받았고 연임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흑자경영이다. 당장은 좋지만 앞으로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 일례로 환율(달러화 대비 원화)이 10원만 올라도 1,300억원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전력 시장 개방의 영향도 있다. 긴장해야 한다. 반면 기회 요인도 있다. 지금은 에너지 신산업의 ‘골든타임’이다. 세계 경제사가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바뀌었다면, 앞으로는 파리 신기후체제 전과 후로 나뉠 것이다. 한전은 이를 하나의 전기로 삼을 생각이다.
  파리 신기후체제란 2020년 만료 예정인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기후변화협약이다. 이는 선진국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있던 1997년 교토 의정서와 달리 195개 당사국 모두가 지켜야 하는 첫 세계적 기후 합의다. 파리협정의 목표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2℃ 보다 현격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세계 7위의 탄소 배출국인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대비 37%를 줄인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이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이산화탄소 감축은 크게 세가지 방법으로 할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 에너지 효율 개선, 탄소 포집이다. 이중 가장 기여도가 큰 것이 에너지 효율 개선으로, 한전에서는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신기후체제에서는 산업, 주거환경, 공장, 에너지 소비형태가 다 바뀌는 만큼 에너지 신산업의 주도권을 잡아 탄소배출권 관련 사업을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전은 에너지 신산업의 확실한 플랫폼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투자에 적극 나서 민간 투자 부문의 마중물 역할도 해보려고 한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한전은 ESS(Energy Storage System/용어해설 참조) 주파수변환장치 실증 사업에 성공했다. 올해는 이를 넘어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 공장에너지관리시스템(FEMS)에서도 성공 모델을 만들고, 건물 안에 신재생에너지형 ESS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신재생에너지는 바람, 태양 등의 양이 일정하지 않으니 ESS를 활용하면 효과가 높아질 수 있다. 아직 해외에 수출하는 데는 경쟁력이 약하다. 마이크로그리드(용어해설 참조)는 해외 사업에서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본다. 이란, 인도 등에서 우리나라의 전력손실률 저감 기술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전은 손실률이 3.5%에 불과하지만 인도는 26%라 차이가 크다. 해외 개발도상국에 가서 전력손실률을 개선하고 우리의 수익사업으로 만들 예정이다.

빅데이터 시대 맞아 한전 역할 더 커질 것
  ‘알파고’를 계기로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 한전도 정보기술(IT) 발전 흐름에 맞춰 기존 업(業)에 변화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IT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한다. 인공지능이 에너지 시설에 접목, 산업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 ‘스핀(SPIN·Smart Power IoT Network/용어 해설 참조)’은 한전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고 있는 개방형 산업생태계 플랫폼이다. 시장도 만들어 나갈 생각이다. 통신과 에너지를 융합하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산업이 생긴다. 한전이 보유한 철탑이 4만2000개, 전주가 880만개다. 기기와 전선에 IoT(사물인터넷) 센서를 달아 먼지, 습도, 진동 등을 측정하면 통신 기업의 신시장이 열린다. 한전이 보유한 데이터가 2억6000만건이다. 이런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무엇을 못 하겠는가? 한전이 신산업 분야에서 역할이 있고 사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해외 사업도 기회가 될 것이다. 세계 발전소 건설 시장은 레드오션이 돼버렸다. 이산화탄소 감축은 세계적인 공통의 숙제다. 한전이 나서서 이를 해결하고 신재생 에너지 등 새로운 분야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국내에서와 달리 ‘KEPCO’ 브랜드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 등 강점이 많다. 여기에다 에너지효율 시장은 개도국에 집중돼있다. 우리도 지난날 이들 개도국과 똑같은 경험을 했다. 기술 전수, 인력 훈련, 국산화(Localization)를 제시하면 상대방도 환영한다. 우리는 일본보다 좋은 기술을 줄 수 없고, 중국처럼 싸게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개도국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안다. 이것이 실제 상대를 움직였다.
  본사를 나주로 이전하면서 생태계가 달라졌고, 한전의 업(業)도 바뀌고 있다. 2014년 12월 서울 삼성동의 본사를 전남 나주 혁신도시로 옮긴 한전은 수도권과 지방간 경제 격차가 벌어지는 악순환을 끊고자 에너지 실리콘 밸리인 '빛가람 에너지 밸리'를 나주에 조성했다. 한전은 빛가람 에너지밸리에 2020년까지 유망 중소기업 500개 유치와 3만명의 고용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는 105개 기업이 유치된 상태다. 올해는 지역을 기반으로 에너지기업 클러스터가 확실히 뿌리를 내리도록 노력하겠다.
  내부적인 문제도 잠깐 말씀드리겠다. 우선 전력시장 개방이야기다. 전력시장 개방은 한전의 매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하지만 개방은 막을 수 없는 추세다. 어차피 시장 개방이 불가피하다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하는 것이 좋다. 가장 우려하는 것은 개방할 때 ‘체리 피킹(cherry picking)’하는 그룹이다. 한전은 한 시간에 몇십대 안 다니는 도로도 (전기 공급을 위해) 닦아줘야 한다. 전력 인프라는 국민들이 공통으로 향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업계에서는 전기료 인하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불황인데 전기료를 줄여 생산비를 절감한다면 산업 경쟁력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전은 반대 입장이다. 어떤 부분에 과도한 부담이 있다든지, 더 나아가 에너지 복지와 저소득층 형평성 문제 해결을 위해 누진세 개편 등은 손을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력 문제를 산업 정책의 수단으로 쓰면 안 된다. 유가가 내리고 곳간 사정이 나아지니깐 교정(인하)해야 한다고 하면 그것이 바로 ‘교각살우(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다. 

* 용어 해설

‘스핀'(Smart Power IoT Network)
=한국전력이 전력분야 사물인터넷(IoT) 융합을 위해 역량있는 기업과 연구기관을 모아 구축한 개방형 산업 동맹. 한전은 이를 통해 전력 IoT 분야에서 선도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세계 표준과 트랜드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내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할 예정인 ‘스핀'은 스마트센서, 게이트웨이·네트워크, IoT 플랫폼, 빅데이터 등 신서비스 4개 분야에서 동반 성장 모델을 구축한다. 한전은 ‘전력IoT 빅데이터 오픈마켓’을 운영해 전력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응용서비스가 탄생하도록 환경을 조성할 예정이다.

ESS(Energy Storage System)
=에너지저장시스템. 발전소에서 과잉 생산된 전력을 저장해뒀다가 일시적으로 전력이 부족할 때 송전해주는 저장장치를 말한다. 전기를 모아두는 배터리와 배터리를 효율적으로 관리해주는 관련 장치들이 있다. 배터리식 ESS는 리튬이온과 황산화나트륨 등을 사용한다. ESS는 신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필수적인 미래 유망 사업으로 꼽힌다.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
=소규모 지역에서 전력 자급자족할 수 있는 스마트그리드 시스템. 소규모 독립형 전력망으로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원과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융복합된 차세대 전력 체계다. 도서지역이나 사막, 오오지나 탈(脫)원전을 추진하는 여러 국가에서 마이크로그리드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