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거듭되고 있고 규모가 너무 커졌다. 가상화폐 문제는 드디어 정치권까지 넘어왔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가상화폐를 “내재가치가 없는 인정할 수 없는 화폐”라고 규정했다. 젊은 세대의 투자 열풍에 대해선 사람들이 많이 투자한다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 올해 9월 거래소가 대거 폐쇄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후 이 발언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가상화폐 시세는 폭락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글이 쏟아졌다. 1분기 가상화폐 투자에 새로 뛰어든 10명 중 6명이 이른바 2030 세대다. 여론의 반응에 민감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태도부터 잘못됐다고 했고, 이광재 의원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했다. 논란이 될 만큼 가상화폐 시장은 너무 커졌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코인 투자 열기가 가장 뜨거운 나라다. 요즘 암호화폐거래소는 밀려드는 투자자로 북새통이다. 국내 4대 거래소의 거래대금은 유가증권 시장보다 많다. 한국은 전 세계 거래량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 중 원화 비중은 달러와 엔, 유로에 이어 4위다. 농협과 신한은행, 케이뱅크의 신규 고객은 폭증하고 있다. 거래소를 통해 비트코인을 사고팔려면 이 은행들 계좌부터 터야 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해외보다 국내에서 더 비싸게 거래되면서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도 생겼다.

  흔히 가상화폐라 부르는 '암호화폐'(Cryptocurrency)가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가상화폐는 지폐나 동전 등의 실물이 없고 온라인에서 거래되는 화폐다. 눈에 보이지 않고 컴퓨터상에 표현되는 화폐를 말한다. 초기에는 '디지털화폐(Digital Currency)'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암호화 기술을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암호화폐'로 더 자주 불린다. 전 세계 암호화폐거래소에 상장된 암호화폐 개수만 약 9천500개다. 비트코인은 세계 최초이자 최대 암호화폐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에 의해 존재한다. 새로운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그 정보를 별도의 블록으로 만들고, 이 블록을 기존 장부에 연결하는 방식이다. 비트코인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17년 말 미국 시카고 상품거래소와 옵션거래소가 비트코인 선물을 출시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가격 상승이 시작됐다. 비트코인은 작년 여름 슬슬 오름세를 타더니 가을부터 치솟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지난 2월 8일 테슬라가 15억 달러의 비트코인을 사들였다는 소식이 열풍에 불을 붙였다. 머스크는 앞으로 전기차를 비트코인으로 구매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2017년 1월 가격이 100만 원대였던 비트코인은 작년 상반기 1000만 원대를 기록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8000만 원까지 찍었다. 시가총액은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등 굴지의 금융사도 비트코인 투자를 선언했다. 전통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고액 자산가 고객을 위해 비트코인 투자상품을 내놓고 경쟁을 시작했다. 두 회사가 비트코인 투자상품을 내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비트코인을 찾는 고객들의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투자 열기에도 불구하고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여전히 가상자산에 부정적이다. 기본적인 인식은 여전히 가상화폐는 금융투자상품이 아닌 투기성 가상자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국 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가상화폐는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투기 수단일 뿐이라고 말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처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가상화폐는 내재가치가 없는 투기 자산”이라고 말했다. 경제학 교과서는 화폐의 기능으로 가치 보전, 교환 매개, 가치 측정 단위라는 세 가지를 든다. 화폐의 기능을 하는 데 가장 큰 약점은 가격의 불안정성이다. 교환 수단이 되기에는 변동성이 너무 크다. 베스트셀러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도 하루에 5%, 한 달에 20% 등락하는 자산은 화폐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3년 전에도 비트코인 가격은 1천 달러에서 2만 달러로 20배나 치솟았다가 3천 달러로 내려앉았다. 가격 변동이 이처럼 심하다면 가상화폐 투자를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피하는 수단으로 보기도 어렵다. 희소성 자체가 곧 가치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법정화폐 뒤에는 국가가 버티고 있다. 내 지갑 속의 1만 원은 한국은행이 보증한다. 달러에는 미국 재무장관의 사인이 있다. 반면 가상자산이라는 투자 대상의 가격은 순전히 수급에 의존한다. 쉽게 말해 사는 이들과 파는 이들의 믿음에 따라 값이 정해지는 것이다.

  물론 가상자산의 운명을 누가 알 수 있을까. 현재로선 누구도 비트코인의 전망을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사실 비트코인을 둘러싼 가장 큰 위험 요소는 정책 규제다. 비트코인이 화폐로서 제대로 기능하려면 결제 수단으로서 기능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비트코인이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규제 당국의 견제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어느 나라나 중앙은행의 힘은 발권력에서 비롯된다. 중앙은행이 가상자산의 경쟁자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지급을 보증하는 디지털화폐(CBDC)가 발행될 경우 비트코인을 비롯한 민간 가상통화의 가치 하락으로 직결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을 간과하는 것도 위험하다. 현재 달러는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가장 '힘 있는 돈'이다. 만약 비트코인이 디지털 자산의 경계를 뛰어넘어 진짜 통화로서의 구실을 한다면, 비트코인은 어느 나라에도 구속되지 않는 세계화폐가 되는 셈이다. 비트코인이 화폐의 영역을 넘보기 시작하면서 달러가 지배하는 세계에 도전하게 된다면 미국 재무부와 연준이 가만히 있을까. 비트코인이 쉽게 주류 화폐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 예단하는 건 섣부르다. 암호화폐의 미래는 미국 재무부와 연준의 입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가상화폐가 제도권에 편입되면서 새로운 투자처로 자리 잡은 건 세계적인 현상이다. 정부 경고에도 가상화폐 투자가 줄 조짐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부는 곧 자금 세탁이나 유사 수신, 다단계 사기 등 가상자산 관련 불법행위 특별단속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한다. 큰 의미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암호화폐 투기 열풍이 불법행위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시행되는 암호화폐와 관련한 법 규정은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 유일하다. 특금법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지침에 따라 암호화폐거래소에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지운 수준이다. 정부는 여전히 암호화폐를 결제 수단이나 금융자산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법적 개념을 명확히 하고, 소비자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보호장치를 마련해 규제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당국은 섣부른 규제가 오히려 암호화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비쳐 투자 광풍을 부추길 수 있다며 부정적이라고 한다.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시장의 지나친 투기 열풍에 경고음을 울리는 것은 바람직하다. 누가 봐도 가상자산 시장엔 거품이 끼었다. 관련 법규가 없어 위변조가 발생해도 이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 투자자 피해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비트코인을 취급하는 기관을 규제하고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시장의 규모가 너무 커졌다. 자칫 전체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를 부를 수도 있다. 그나저나 늦었지만, 비트코인에 투자해도 될까. 투자한다면 어느 정도 하는 게 적당할까. 지금 상황에서 확신을 갖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창업자 레이 달리오는 비트코인에 투자한다면 80%를 잃더라도 괜찮은 정도의 자금만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참고로 달리오는 170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부자다.